2026. 6. 2. 07:27ㆍ자작 소설
인생에는 분명 ‘적응기’라는 것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던 일도 시간이 흐르면 몸이 기억하고, 머리가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며, 결국에는 무뎌진다. 내게는 도보 배달이 그랬다.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10층 계단을 오르고 나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선 외형부터 변했다. 6개월간의 은둔 생활로 얻었던 ‘인격’ 같은 뱃살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턱선이 다시 살아났고, 티셔츠 위로 툭 튀어나왔던 배는 이제 적당히 들어갔다.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웬만한 언덕길 정도는 숨 하나 헐떡이지 않고 경보하듯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실적 또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제는 앱의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어느 구역에 콜이 많이 뜨는지, 어느 시간대에 단가가 올라가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하루 10건 이상의 배달도 거뜬히 처리했다. 한 건당 3,000원에서 4,000원. 하루에 3~4만 원 정도의 쏠쏠한 용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록 전직 엔지니어로서의 연봉에 비하면 껌값이었지만, 내 발로 직접 걸어 번 이 돈은 묘한 자존감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내 삶에 찾아온 평화에는 늘 ‘함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사용하는 배민 커넥트 앱의 ‘멍청한’ 알고리즘이었다.
나는 화성시와 안산시의 경계선 근처에 살고 있다. 우리 동네의 지리적 특징은 중간에 시화호라는 거대한 강 같은 호수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 호수를 건너려면 반드시 정해진 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똑똑하신 배민 알고리즘은 ‘직선거리’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잔인한 논리로 나에게 배차를 준다.
띠링—!
[픽업: 화성시 XX치킨 / 도착지: 안산시 OO아파트]
화면 속 지도를 보면 픽업지와 도착지는 정말 가깝다. 그냥 선 하나만 그으면 닿을 거리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도보로 그 직선을 따라가면 나는 시화호에 빠져 수영을 해야 한다. 다리를 돌아가려면 직선거리의 몇 배는 더 걸어야 하는, 도보 라이더로서는 절대 수행 불가능한 ‘강제 행군’ 코스였다.
‘아니, 내가 화성에 있다고 설정해 놨는데 왜 자꾸 안산 콜을 주는 거야!’
나는 분통을 터뜨리며 거절 버튼을 눌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역 설정을 분명히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은 나를 ‘수륙양용 라이더’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참다못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저기요, 제가 도보 배달인데 자꾸 강 건너 안산 콜을 주시더라고요. 다리 돌아가면 너무 멀어서 도저히 못 가요. 지역 설정 반영 안 됩니까?”
상담원의 답변은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현재 배차 알고리즘이 직선거리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어서요. 지역 설정은 단순히 정보를 받는 설정일 뿐, 배차 알고리즘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개발 부서에 건의는 해보겠지만, 그전까지는… 음, 위치를 조금 옮기면서 배차를 진행하시는 게 어떨까요?”
위치를 옮기라고? 집에서 대기하다가 콜이 뜨면 나가는 내 패턴에서, 콜을 잘 받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라는 말인가. 이건 거의 ‘유목민’이 되라는 소리와 같았다.
더욱 속상한 것은 ‘배차 수락률’이었다.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안산 콜을 거절하다 보니 내 수락률이 어느덧 80%까지 떨어졌다. 나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일은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시스템이 나를 계속 ‘거절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수락률이 떨어지면 나중에 정말 좋은 콜이 떴을 때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배민, 제발 좀 똑똑해져라. 직선거리만 따지지 말고 다리 좀 그려 넣어 달라고!’
하지만 앱에 대고 소리를 질러봤자 돌아오는 것은 정적뿐이었다. 나는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운동화 끈을 묶었다.
사실 배달 일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 기사들처럼 험하게 운전할 일도 없고,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딱 두 구간, ‘픽업’과 ‘전달’ 시점에는 어쩔 수 없이 사람과 마주쳐야 했다. 그리고 그 구간에서 나는 내 인생 최악의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게 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어느 유명 스시집에서 일어났다.
배차가 뜨자마자 나는 신속하게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음식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장님, 배민 커넥트 픽업 왔습니다.”
젊은 사장님은 내 얼굴조차 보지 않은 채 툭 던졌다.
“아직 안 됐어요. 밖에서 기다리세요.”
가게 안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했다. 나는 민폐를 끼치기 싫어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보통 조리 대기 시간은 3분에서 5분, 길어야 10분이다. 라이더에게 그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장님은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집은 달랐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30분이 지나도록 내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사장님의 부름을 기다리는 충성스러운 강아지처럼 느껴졌다. 속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참았다. ‘그래, 오늘 주문이 많아서 그렇겠지.’
결국 35분 만에 음식을 받았다. 그런데 사장님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무표정하게 봉투를 내밀었다. 마치 당연히 내가 기다려야 한다는 듯한, 혹은 나를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여기는 고압적인 태도였다.
봉투를 받아 들고 가게를 나오며 나는 맹세했다.
‘내 돈 주고 여기 절대 안 온다. 여긴 서비스가 아니라 인성이 글러 먹었어.’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단골 설렁탕집에서 두 번째 사건이 터졌다.
가게에 도착해 쟁반 위에 놓인 음식들을 확인했다. 내 주문 번호가 적힌 봉지 옆에 코드 없는 작은 봉지가 하나 더 있었다. 상식적으로 같은 쟁반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면 세트 메뉴거나 함께 가야 할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온백에 담았다.
그때였다.
“이걸 거기에 넣으면 어떻게 해요!”
갑자기 뒤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사장님이 얼굴을 붉히며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상황 설명이나 정중한 요청은 없었다. 그냥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식이었다.
“아, 여기 같이 있길래 같이 가는 건 줄 알고….”
“아니, 그걸 왜 그냥 집어넣어요? 확인 똑바로 안 해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내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단순한 착각이었을 뿐인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실수한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멍청한 인간’을 보는 눈이었다.
나는 묵묵히 봉지를 꺼내 놓았지만, 이미 기분은 바닥을 쳤다. 배달을 하는 내내,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 재생되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내가 돈을 받고 배달을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나를 부리는 주인은 아니잖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복수할까 하는 유치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중에 배민으로 여기서 시켜 먹고 별점 1점을 줘버릴까?’, ‘리뷰에 사장님 불친절하다고 아주 상세하게 적어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잠시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배달 라이더들은 결국 그 지역의 주민이자, 잠재적인 고객들이다. 사장님들은 착각하고 있다. 자신들이 갑이고 라이더가 을이라고. 하지만 장사의 신이라고 불리는 유명 유튜버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배달 기사에게 친절한 집이 결국 성공한다. 그들은 고객의 음식을 소중히 전달하는 파트너이지, 소모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같은 동네 주민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줘서 장사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그 집 설렁탕 맛있는데 사장님이 개돼지 취급하더라”라고 한마디만 해도, 그것은 어떤 광고보다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다. 결국 자신의 발등을 스스로 찍는 행위였다.
하지만 논리적인 분석이 끝나도 가슴 속 응어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 마상 입었다.’
전직 엔지니어, 현직 라이더 정준수.
살은 빠졌고 몸은 날렵해졌지만,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 앞에 내 마음은 여전히 보들보들한 두부 같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배민 커넥트 앱을 보았다. 수락률 80%의 처참한 숫자와 함께, 또다시 안산에서 오는 ‘직선거리’ 콜이 떴다.
나는 조용히 거절 버튼을 눌렀다.
오늘은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나 보며, 내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내일은 반드시 더 당당하게, 더 전문적인 라이더의 모습으로 거리를 누비겠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 설렁탕집 사장님이 내 별점 1점에 벌벌 떠는 날이 오기를 아주 조금 기대하며, 나는 무거운 몸을 침대 속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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