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30. 21:03ㆍ여행기록
호숫가 산책으로 시작한 아침
숙소 앞에는 아주 큰 호수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볍게 산책에 나섰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보던 호수를 떠올리며 물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맑아서 놀랐다. 강물이 호수로 흘러드는 모습은 마치 바다로 물이 유입되는 장면처럼 보였다. 청량한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어제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호숫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실제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과연 잡히기는 하는 걸까?
일본의 잠자리들은 유난히 겁이 없는 모양이다. 내 스마트폰 위에도 앉고 친구의 손에도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다. 호수 주변은 어디로 걸어도 좋을 만큼 잘 정돈되어 있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됐다.
아침 온천과 조식
산책을 마친 뒤에는 아침 온천을 즐겼다.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마사지 기계로 전날 트레킹 때문에 뭉친 몸도 풀었다. 생각보다 너무 시원해서 집에 한 대 들여놓고 싶을 정도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는 대여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산책로가 워낙 좋아 자전거를 타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전거보다 밥이 먼저다. 미련 없이 통과!
이곳은 식권이 있어도 바로 입장할 수 없고, 예약 후 순서에 맞춰 들어가야 했다. 식당이 넓지 않아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조정하는 듯했다.
전날 과식한 탓인지 아침은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접시 하나 정도 먹고 마즙과 커피로 마무리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유튜브 촬영을 계속했더니 선배가 한마디 했다.
“여행을 와서도 계속 일만 하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 오는 아침의 약육강식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창밖에서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비를 피해 날아다니다가 거미의 먹잇감이 된 듯했다. 평화롭게만 보이던 자연 속에서도 생존 경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강하면 살고, 약하면 죽는다.”
쯔요케레바 이키루, 요와케레바 시누!
그렇게 체크아웃을 하고, 두 번의 식사와 두 번의 온천을 알차게 즐긴 숙소를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잘 쉬어 간다는 느낌을 준 곳이었다.
비 내리는 주젠지호
여행 2일 차의 첫 목적지는 닛코 자연박물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박물관을 관람하러 온 것은 아니고, 근처 신사를 방문하기 위해 들렀다.
가는 길에는 무시무시해 보이는 반달가슴곰 모형도 만났다. 크기만 보고 있자니 ‘이 정도면 나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잠시 솟아올랐다.
물론 실제로 만나면 내가 ‘쿠마노 에사’, 즉 곰의 먹이가 되겠지만 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에는 ‘G7 NIKKO’라고 적힌 표식을 발견했다. 선배에게 물어보니 G7 정상들이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한다. 맞은편의 고급스러운 숙소는 각국 정상들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했다.
저기서 자면 나도 대통령급인가?
호숫가에는 자갈과 커다란 돌이 가득했다. 멀리 보이는 배는 오리배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위배였다. 호수가 워낙 넓어서인지 수면에는 바다처럼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비까지 내리니 묘하게 감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호숫가의 돌을 하나씩 쌓아 돌탑도 만들었다. 높아질수록 균형 잡기가 어려워졌지만, 다행히 무너지지 않고 제법 멋지게 완성했다.
호숫가의 신사와 에비스
첫 번째 목적지인 신사에 도착했다. 우츠노미야에 있는 신사와 같은 신을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옆에는 난타이산의 신을 모시는 신사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뜻밖에도 장사의 신 에비스를 만났다. 왜 이곳에 있는지는 일본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에비스 맥주 덕분에 익숙한 신을 만나니 괜히 더 반가웠다.
레트로 쇼핑센터에서 만난 군번줄
기념품을 사기 위해 근처 쇼핑센터에도 들렀다. 화려한 곳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건물 특유의 레트로한 분위기가 있었다.
가게를 둘러보던 중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다.
군번줄이었다.
대체 왜 일본 관광지에서 군번줄을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순간 군 생활의 기억이 떠오르며 갑자기 PTSD가 밀려왔다.
근처에는 쓰케모노를 판매하는 가게도 있었다. 치즈 절임은 한 번 먹어 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이미 아는 맛일 것 같아 참았다.
돈을 내고 봐도 아깝지 않았던 게곤폭포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닛코의 대표 명소인 게곤폭포가 나온다.
폭포를 가까이에서 보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 100m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용료는 600엔이었다. 자연경관을 보러 내려가는 데도 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마치 동굴 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벽은 습기로 젖어 있었고 공기도 축축하고 서늘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거대한 게곤폭포가 눈앞에 나타났다.
살면서 이렇게 큰 폭포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전날부터 비가 내린 덕분에 수량도 풍부해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안개가 짙지 않아 폭포의 전체 모습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주 폭포 주변에서는 여러 개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함께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혹시 여기가 천국인가?’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장소였다.
하지만 이곳은 과거 자살 명소로 알려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다시 올라온 뒤에는 무료 전망대에서도 폭포를 바라봤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좋았지만, 압도적인 크기와 굉음을 온몸으로 느끼기에는 아래쪽 전망대가 훨씬 좋았다.
결론적으로 600엔을 내고 내려가길 잘했다.
원숭이와 사슴이 사는 닛코
게곤폭포를 떠나 사케 양조장으로 향하던 중에는 새끼 원숭이를 등에 업은 어미 원숭이를 발견했다. 닛코에 원숭이가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관광객이 아니라 이 동네 주민 아닌가?
조금 뒤에는 사슴까지 만났다. 야생동물을 연달아 보니 닛코의 자연을 제대로 체감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렇게 자연이 풍부하다면 곰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산길을 내려갈 때는 자동차가 지나가면 노면에서 음악이 들리는 ‘멜로디 도로’도 경험했다. 정작 무슨 음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료 시음의 함정, 사케 양조장
양조장에 도착하자 여사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케 네 병을 차례로 꺼내 각각의 특징을 설명해 주고 한 잔씩 시음할 수 있게 해주셨다.
여러 종류의 사케를 무료로 맛볼 수 있어 좋았지만,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신 나머지 결국 한 병을 사고 말았다.
혹시 이것이 고도의 상술이었을까?
그래도 한국에 돌아갈 때 사케를 사 갈 생각이었으니, 좋은 양조장에서 마음에 드는 술을 구입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함께 온 친구들은 두 병씩 샀으니 나만 넘어간 것도 아니었다.
마음껏 시식할 수 있는 과자공장
마지막 목적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과자공장이었다.
매장에는 스무 종류에 가까운 과자가 진열되어 있었고, 하나하나 직접 맛볼 수 있는 시식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음료까지 무료로 마실 수 있어 집 근처에 있었다면 매일 가고 싶을 정도였다.
회사에 돌릴 기념품까지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아내에게 줄 과자 한 세트만 골랐다. 여러 제품을 시식해 본 결과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검은깨 과자였다. 고소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아 자꾸 손이 가는 맛이었다.
닛코를 떠나 요코하마로
과자 쇼핑을 끝으로 일행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호숫가 산책으로 시작해 온천과 신사, 게곤폭포, 야생 원숭이와 사슴, 사케 양조장과 과자공장까지 알차게 돌아본 하루였다. 비가 내리는 날씨조차 닛코에서는 여행의 분위기를 더해 주는 요소가 됐다.
이제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선배가 살고 있는 요코하마다.
나는 아직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만나지 못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보고 싶다.
그렇게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닛코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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